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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宗敎人 김병윤의 ‘하나님과의 대화(22) 사후세계

김병윤 | 기사입력 2022/03/29 [08:34]
천당과 지옥의 존재는 그리스 철학자들이나 조로아스터교의 영향

無宗敎人 김병윤의 ‘하나님과의 대화(22) 사후세계

천당과 지옥의 존재는 그리스 철학자들이나 조로아스터교의 영향

김병윤 | 입력 : 2022/03/29 [08:34]

원래 부처나 예수의 가르침에는 천당과 지옥이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간혹 천당이나 지옥이 거론되긴 하였으나 비유적 의미로 쓰였거나 교훈적 목적으로 인용된 것이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개념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천당과 지옥은 실제로 존재하진 않고, 오직 성직자들이 신도들의 상상 속에 심은 장소일 뿐입니다. 이것을 종교계가 확대 해석하고 일반인들에게 사실인 것처럼 인식시키려는 의도로 구체화시키고 있는 것이 문제면 문제라 하겠습니다.

 

예수는 요한복음 6:38에서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라고 하면서, 자신이 하늘(천당)에서 내려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복음서 어디에서도 천당의 모습을 제대로 알려 주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뤄 보면 예수가 자신이 하늘에서 왔다고 주장하였지만, 하늘(천당)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그냥 언급했거나 천당의 모습이 표현하기에 부적절한 환경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사후에 영들이 특정한 장소로 이동하고 이곳에서 자신의 이승에서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은 후, 상응하는 거처로 이동하여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보상이나 처벌을 받은 후, 다시 이승으로 내려온다고 생각했다.” 1)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죽은 자들이 수호자의 인도로 이곳에 오게 되면 훌륭하고 경건하게 살았거나 그렇지 않았거나 모두 심판을 받는다. 큰 사고 치지 않고 평범하게 산 사람들은 아케론강으로 가서 운반선을 얻어 타고 호수에 다다른 후, 거기에 머물며 자신들이 저지른 죄과를 정화한다. 자신이 타인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한 벌을 받고 죄로부터 벗어난다. 자신의 선한 행위에 대해서는 개별적으로 보상받는다. 하지만 지은 죄가 심각한 사람(심각하게 또는 자주 신성 모독을 저질렀거나, 잔인무도한 살인을 저지른 경우)은 타르타로스에 던져져 다시는 빠져나올 수가 없다’” 2)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종교에서 사후세계에서의 심판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주장과 달리, 그리스 철학자들은 아주 심각한 죄가 아니거나 교정이 가능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타르타로스에 갔다가 일정 기간이 지난 후,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상대방이 이를 수용하면 호수로 돌아와 죄를 정화한 후 윤회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존 기독교 성경 내에는 천당과 지옥에 대한 내용이 거의 전무합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로마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지정한 후 이와 상충되는 내용의 복음서나 그리스 문화권의 사상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전부 불사르거나 소장을 금지하였습니다. 이런 대대적인 문화 말살 조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철학자들의 일부 서적들이 아랍 지역으로 넘어갔고, 이슬람교는 이들의 이론을 반영하여 사후세계가 포함된 교리를 정립하여 자신들의 경전인 쿠란을 만들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중세 후기부터 아랍 지역에서 통용되던 그리스 철학자들의 저서를 접하게 되었고, 이후 사후세계나 영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반영한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기원후 14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르네상스 시대는 중세 암흑기를 근세와 연결해 주는 시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예부흥기 또는 문화 혁신 운동으로도 불리는데 그동안 이단으로 치부되어 근접할 수 없었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을 복구하자는 것이 르네상스의 핵심입니다. 단테(1265~1321)1308년경부터 죽기 전까지 쓴 신곡이 이 시기와 겹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천당과 지옥은 그리스 철학자들이나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천주교도 그리스 철학자들과 비슷한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1999년에 천당과 지옥은 실체를 갖는 장소가 아니라 신과 교감(하거나 또는 하지 않을 수 있는)하는 영의 상태라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그곳에서 우리가 접하는 천당이나 행복은 구름 속에 존재하는 실체적 장소나 추상적 관념이 아니고, 삼위일체와 생동감 있게 사적 관계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3)

 

천당은 현세의 기준에 따라 배부르고 부유하게 지내는 장소가 아닐 것이고, 지옥 또한 고통을 받거나 초라하게 지내는 곳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즐거움을 느끼는 주체인 육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육체가 없다면 육체와 긴밀하게 연결됨으로써 기능을 담당하는 정신도 따라서 없어집니다. 육체가 없는 영적인 상태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영적 세계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절대 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후 세계를 따지는 의미 또한 없어지게 됩니다.

 

또한, 그곳의 삶의 환경이 지상과 다르다면 그곳에서의 생활도 바뀌어, 그곳에 간 이들은 이승에서의 존재가 아닌 완전히 다른 존재로 바뀔 것이 분명합니다. 경전들에 나오는 것과 같이 만약 천당에서의 삶이 풍요로움 속에 지속된다면 어려움을 잊게 될 것이고, 그러면 성격이나 사고방식이 완전히 탈바꿈할 것이 자명합니다.

 

파스칼 내기:

 

위대한 프랑스 수학자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신이 존재할 확률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잘못 추정했을 때 [지옥에 떨어져] 겪을 대가가 훨씬 더 크다고 판단했다. 만약 당신의 판단이 옳다면 당신은 [천당에 가서] 영원한 축복을 누릴 수 있지만, 틀렸을 경우에는 [사후에 어디로 가든] 차이 날 것이 별로 없으니 차라리 신을 믿는 편이 더 유리하다.” 4) 일명 파스칼의 내기라는 것인데 신을 믿어 천당에 가는 것이 신을 믿지 않아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이득이라는 결론을 냈습니다.

  

하지만 파스칼 본인도 신의 존재 가능성을 아주 낮게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스칼이 주장하는 내기의 당위성을 인정하려면 관련된 모든 변수를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신의 정의,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증거나 존재 확률, 신의 속성이나 변덕성, 신이 지시하는 내용의 수용 가능성, 사후세계의 존재 가능성 및 환경의 쾌적함 등의 변수들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존 종교에서 내세우는 교리를 경전 위주로 분석하면서, 과연 신의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신빙성을 갖고 있는 지와, 소위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는가를 먼저 따져봐야 합니다. 그런 다음 저승이라고 불리는 장소의 존재 가능성이 있는지, 만약 있다면 그곳에 가서 살면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인만 천당에 가고 이승에서 함께 했던 지인들 중 상당 수가 지옥으로 갔을 경우를 상정해 봅시다. 이런 상태가 되면 완벽했던 이승에서의 삶과는 달리 인간 관계의 공백이 많이 나타나 무질서한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천당의 삶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보다는 오히려 고통스럽고 불행하게 할 것입니다.

 

이승에서 원수처럼 지내던 사람을 저승의 같은 곳에서 만나 영원히 함께 기거해야 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다른 신을 믿는 신도들이나 같은 신을 믿더라도 다른 이름의 종파에 속해 다툰 끝에 죽은 사람들이 같은 천당에 가서 살면 과연 행복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과학으로 규명된 관성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는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어떤 물체든지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계속 움직이려는 속성을 갖게 됩니다. 파스칼의 내기는 일종의 도박입니다. 도박을 할 때 돈을 따거나 적게 잃기 위해서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 ‘몰입 상승의 작용이나 관성의 법칙을 알고 이를 피하는 것입니다. 몰입 상승의 작용은 어떤 일에 많은 노력(시간 포함)과 자원을 투입하면, 그 일에서 쉽게 손 털고 나올 수 없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어찌 보면 이것은 이승에서의 삶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영원히 영향을 받을 수 있고, 특히 자신의 선택으로 후손에게도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종교에 귀의하기 전에 최소한 기본적인 요소에 대한 확인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 몰입 상승에 빠지지 않을 것이고, 파스칼의 내기를 앞두고도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에서 묘사하고 있는 천당(새 예루살렘)이 사후세계의 천당으로 자주 인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조건을 따져보면 면적은 484로 미국에 대비하면 2분의 1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벽과 천정을 만든 것 같은데 높이가 2,200km로 충분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자연환경과 비교하면 상당한 제약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모든 인류가 부활하여 지구에서 산다고 해도 좁아서 어려움이 많을 텐데, 미국의 2분의 1 규모의 장소에 아무리 선발된 사람들만 들어가 산다고 해도, 여기에서 사는 삶은 결코 안락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만약 요한계시록의 설명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사람들이 천당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당에 설치한 12개의 문에 이스라엘 민족 지파의 이름이 쓰여 있는데, 이 지파에 속하지 않는 다른 민족의 사람들은 그곳으로 들어갈 때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초기 이스라엘 국가를 만들 때 있었다는 12지파의 후손들 중에서 각각 12,000명씩을 뽑아 총 144,000명의 유대인 총각들에게 이마에 인장을 찍어 지배자의 표식을 하고 세상을 지배하라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 구원을 받아 어렵게 천당에 올라간 사람들은 이들의 통치 하에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저승에서의 삶의 환경에 대한 해답은 요한계시록 5장을 통해 구할 수 있습니다. ‘수백만이나 수억에 달하는 천사들이 큰 목소리로 일찍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아이)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다’(5:11-12)라며 칭송합니다. 이런 식으로 쉼 없이 소리를 질러대고 신을 칭송하고 찬양하는 소리들이 지속된다면 심각한 소음 공해가 예상됩니다. 5:14에는 네 생물(사자, 황소, 독수리, 사람저자 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할 수준이면 일반 신도들은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까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언급하는 혜택 중에 부(, wealth)가 두 번째로 나오는데, 천당에서 부를 가지고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죽임을 당했다는 표현은 극단주의 이슬람교를 믿어 폭탄 테러를 저지른 아이를 연상케 합니다. 이슬람교는 천사나 하얀 건포도를 주는데, 기독교에서는 부를 우선적으로 보장합니다.

 

요한계시록 22:5다시는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면 소음 공해는 물론이고 빛 공해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눈과 귀가 쉴 틈이 없는 그곳에서는 조금만 지내도 노이로제가 심해지거나 정신병이 들 겁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은 기독교인들이 죽은 후에 가는 저승의 천당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위해 이승에 세워질 우리 민족을 위한 천년 왕국입니다. 이사야 65장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는 마음이 구현되는 오직 유대인들을 위한 유토피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잘 분석해 보면 이 공간에 다른 민족이 끼어들 틈새는 전혀 없습니다. 

출처:

1) Euthyphro, Apology, Crito, Phaedo, Plato, Prometheus Books, Amherst, NY, 1988: 128-9

2) Euthyphro, Apology, Crito, Phaedo, Plato, Prometheus Books, Amherst, NY, 1988: 134

3) Heavens on Earth, Michael Shermer, Henry Holt and Company, 2018: 57

4) The God Delusion, Richard Dawkins, Bantam Press, 2006: 130  

 

필자 김병윤1957년생으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퍼듀대학교 MBA 과정을 졸업했다. 대우조선과 삼성전자에서 20년 이상 근무하며 마케팅업무를 담당했으며, 삼성인력개발원에서 국제화 및 외국어 교육팀장을 역임하였고 이후 가천대학교, 신구대학교, 연세대학교 원주분교 및 호원대학교에서 겸임교수와 시간강사로 활동했다. 현재는 두레스경영연구소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삼성신화 아직 멀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대한민국 판도라 상자를 열다, 정아에게 보내는 서른 장의 편지, ()과 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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